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봉오동 전투 위치 홍범도 장군묘 기념사업회 나이

ghku88 2021. 8. 15. 13:11

일제강점기에서 ‘봉오동 전투’의 주역 여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제76주년 광복절인 2021년 8월 15일 국내로 봉환된답니다. 지난 1943년 10월 이역만리 떨어진 카자흐스탄에서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지 78년 만이랍니다.


국가보훈처에 따르게 되면 8월 14일에 카자흐 크즐오르다 묘역에서 수습된 홍 장군 유해는 현지 병원에서 하룻밤 임시 안치됐다고 하며, 이날 오전 우리 공군 특별수송기(KC-330 ‘시그너스’)에 실려 국내로 봉송된답니다. 이를 위해 이날 오전 8시쯤에 크즐오르다 공항에선 우리 군 의장대가 카자흐스탄군 의장대로부터 홍 장군 유해를 넘겨받는 의식이 진행될 예정이랍니다


홍 장군 유해를 실게된 우리 공군 수송기는 이후 크즐오르다 상공을 3차례 선회 비행한 뒤 서울로 향하게 된답니다. 수송기는 이날 오후 경기도 성남 소재 서울공항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답니다.

한편, 홍 장군은 지난 1920년 중국 지린성 봉오동에서 700여명의 독립군 연합부대를 이끌고 일본군 1개 대대를 섬멸했으며, 우리 무장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랍니다. 홍 장군은 같은 해 10월엔 지린성 청산리에서 북로군정서를 지휘하던 김좌진 장군과 합세해 일본군을 재차 대파(일명 청산리 대첩)하기도 했답니다.


하지만 홍 장군은 1930년대 연해주 거주 당시 극동지역 한인들에 대한 소련(지금의 러시아)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카자흐로 이주해야 했고, 숨질 때까지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답니다. 우리 정부는 지난 1990년대부터 카자흐 측과 홍 장군 유해 봉환을 논의했던 것이지만, 당시엔 현지 고려인사회 및 북한의 반대로 벽에 부딪혔답니다. 특히 북한 측은 홍 장군 출생지가 평양이란 이유로 그 유해 또한 북한으로 봉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바가 있답니다.